Ⅰ. 개요
근대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용어 자체에는 개념적 모호함이나 범주적 혼란 같은 것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우선 근대의 개념은 역사적이다. 즉 편년(編年)적이란 말이다. 근대는 중세 다음에 나타나는 시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용어이
근대시가 등장한 시기이다.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1922), <금성>(1923) 등의 동인지가 나오면서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었다. 3·1운동의 실패로 인해 내용 면에서는 허무의식을 노래하거나 감상적이거나 애조를 띤 시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11.5.1. 주요한·김억·황석우
(1) 주요한(朱耀翰, 1900~
이상화하거나 낭만화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이러한 낭만적·이상적 환상은 깨어졌다. 부르주아로 성장하고자 했던 이상은 식민지 권력의 억압과 잔존하는 중세적 유제에 의해 차단되었다. 이들이 추구해온 자유와 개인의 발견은 관념속의 자립이었다. 이와 함께 문학의 자립과
3 ‧ 1독립운동의 결과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한국의 식민지 경영방식을 바꾸어 통치하게 이르렀다. 일제의 문화 통치는 오히려 강화된 무단 정치의 연속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 문화 통치의 본질은 무엇보다 친일세력을 확대시켜 독립 운동 전선을 분열시키는 데 있었다. 그러나 부분적
하였다. 또 자유시의 경우에는 율적 산문이, 김소월에 와서는 전통율조가 새롭고 완미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문학파에서는 산문시의 가능성, 30년대 모더니즘에서는 자동기술법이, 생명파와 청록파에서는 형태적 무관심 또는 민요조의 완성, 현대에 와서는 형태의 무정부상태라고 진단하였다.
시인부락》, 《문장》 등의 잡지가 출간되면서 발표지면이 점차 확장되었다는 점도 그것을 가속화시키는데에 일조하였다. 이러한 30년대 문학의 양적 팽창과 동시에, 카프의 해체 이후 목적의식적인 경향이 사라지고,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장편소설의 창작에 대한 관
시인들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에 반해 김기진의 논리②는 상당히 개념적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서구적 보편성과 일반성이 한국적 특수성으로 체화되어 나타나지 않았다는 한계를 가진다. 낭만주의를 고전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본 것이나 낭만주의의 특성으로 개성적, 이상적, 신비적, 열정적, 자
(3) 개인과 사회의 관찰
1) 현진건
현진건은 일본, 중국에서 유학하고 1919년 돌아와 이상․백기만 등과 동인활동을 하다가 1920년『개벽』에「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1922년에는『백조』동인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소시민 지식인의 빈궁과 예술
근대시 그 중에서도 자유시(自由詩)의 시발점이며 나아가 다음세대에 전승시킬 싹이 돋아난 시기이므로 이 기점의 설정과 출발은 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에서 우리 문학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한국 근대 문학의 초기적 양상을 제대로 규명하는데